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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비용-편익 분석의 합리성을 넘어서
작성자 관** 작성일 2014-05-21 조회수 611

비용-편익 분석의 합리성을 넘어서


본문

공공정책의 책무성

국가 수준의 정책은 일반적으로 상당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되는 방안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구체적 과정을 내용에 담게 된다. 당연히 이런 정책이 성공했을 때는 긍정적 파급 효과가 크지만, 반대로 실패했을 때의 부정적 영향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국가 수준의 정책은 처음 정책 내용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매우 신중하게 기획되어야 하고 여러 수준에서 그 내용의 타당성을 평가해야 한다. 국가 정책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정책의 평가 과정에서 정책의 효율성만이 아니라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의 바람직함에 대한 평가와 성취 방법의 적절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 역시 요구되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 정책에 대한 보다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는 특정한 내용과 지향점을 갖는 국가 정책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려는 자원은 제한된, 공적 자원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 자원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에 활용될 수도 있었을, 희소한 자원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국가 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 정책의 지향점이나 실현 방안, 기대 효과에 대한 절대 평가에 그쳐서는 안되며, 동일하거나 유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적 정책에 대한 상대적 비교 평가여야 한다.

공공정책의 이러한 특징은 과학기술 정책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그 영향력은 그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조차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탈추격 기술개발 단계에서 지속적인 과학기술 혁신을 이루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가 두드러진 나라에서는 이러한 혁신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효율적인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물론 그 정책이 과거 빠른 속도로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시절처럼 국가가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형태여야 하는지 아니면 민간의 과학기술 혁신을 돕는 우호적 생태계 조성에 있는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효과적이고 적절한 과학기술 공공정책의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노인케어(도우미)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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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공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제를 공공 정책의 책무성 혹은 해명가능성(accountability)의 문제라 한다. 공공 정책의 책무성을 확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직관적으로 바람직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예를 들어, 노인 복지 수준 향상),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우위에 있는 방안이 정책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 복지 수준 향상이 가치있는 일이라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그것이 노인돌봄 로봇의 개발과 보급이라는 기술공학적 정책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의 노인 공동체의 활성화라는 사회공학적 정책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편익 분석

이런 상황에서 공공 정책의 책무성 확보 과정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정책의 경제적 합리성을 비용-편익(cost-benefit) 분석을 통해 따져보는 것이다. 비용-편익 분석은 탄탄한 이론적 기초를 갖고 있으며 정교한 통계 분석을 활용하여 계량화된 결론을 이끌어 내기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 게다가 거시적 정책의 사회윤리적 정당화의 맥락에서 설득력이 높은 공리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면 비교적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흔히, 근대 경제학, 특히 공공 복지 경제학의 윤리적 토대를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공 정책 입안과 실행, 평가 과정에서 비용-편익 분석으로 측정되는 경제적 합리성은 주도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비용-편익 분석의 직관적 설득력은 대중 매체에 제시되는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정당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흔히 특정 기술 개발이나 연구투자가 실현되면 얼마의 경제적 가치가 에상된다는 예측치가 (대개는 얼마의 비용이 든다는 사실은 빠뜨린 채) 제시되며, 예상되는 경제적 이득이 클수록 소개되는 공공 정책의 타당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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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각종 공공 정책에 대한 사회적 갈등의 경험, 예를 들어,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설치 문제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등을 통해 우리는 명시적 경제적 계산에만 근거한 공공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공공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렇기에 원칙적으로 계상할 수 없는) 비합리적 개인 및 집단이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가한 정책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회적 논쟁에 대해 논자에 따라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평가가 나올 것이다. 한편 최소한 수만 년 동안 보관하고 관리해야 하는 방사성 폐기물과 관련된 비용처럼 현실적으로 정확한 값을 매기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통상적인 비용-편익 분석에서는 아예 제외하는, 즉 경제적 고려에서 빠지는 비용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 합리성의 한계와 사회문화적 합리성의 고려

공공 정책을 둘러싼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경험에 조건 지워진 시민들은 경제학 이론이 제시하는 합리적 행위자처럼 행동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으로 몰아가기도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즉, 이런 맥락에서는 경제적 합리성에 입각한 고려가 타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정당하지도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행태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연구 결과는 경제적 합리성을 벗어나는 개인의 사회적 행동 많은 경우 편익증진적이거나 때로는 문제해결에 생산적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방사선 폐기물 처리 부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에서 객관적으로 측정된 사고 위험이 확률적으로 대단히 낮다는 사실에만 근거한 공공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1) 위험에 대한 확률은 제한된 자료와 수많은 시설 관리 및 지질학적 가정에 근거한 하나의 추정치에 불과하기에 분명 ‘객관적’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고 학술적으로도 논쟁가능하며, (2) 설사 얻어진 사고 확률이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 가정하더라도 실제 행위자들은 숫자로 제시된 위험(risk)이 아니라 자신의 맥락화된 상황에서 느끼는 위험인지(risk-perception)에 입각하여 행동하며, (3) 경제학적 행위자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고려할 때 실제로 추상적인 위험이 아니라 정서적인 위험인지에 입각하여 행동을 내리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택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무지’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에 입각하여 공공정책을 세우는 것은 결코 효과적일 수 없다.

이런 사실은 우리보다 먼저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유럽, 미국, 일본의 경험에 대한 수많은 사례 연구를 통해 이미 잘 입증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합리성만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동일한 효과를 내는 사회적 결정이라도 그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도달했는지에 대한 따라 다른 사회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기껏해야 사회적 합의비용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을 뿐이며, 항상 그 비용은 이상적인 합리적 선택에서 벗어나는 추가 비용 혹은 ‘외부성(externalities)’으로만 이해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경제적 합리성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런 의미로만 합리성을 이해한다면 개미가 인간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결정 과정의 민주적 절차성과 의견 수렴의 공정성에 대한 시민의 요구를 적절한 방식으로 수용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선 사회문화적으로 합리적인 정책 수행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적 합리성의 중요성

여기에 더해 사회문화적 합리성의 필요성만큼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공정책 관련 사회적 논쟁 상황에서 실제로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개념적 혼동 및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부족의 폐해도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 정책의 목표인 복지의 개념을 정확히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따라 정책의 방향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단순한 형태의 공리주의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똑같은 공리주의자라도 존 스튜어트 밀이 제시한 자기능력을 실현시켜서 개체성(individuality)을 완결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제도라는 측면에서 공공정책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가진 역사적 유산에 비추어 볼 때 서구에서 도입된 공공정책이 어떤 문제점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고찰 역시 부족한 편이다.

특히, 공론장의 형성 과정이 다양한 사회적 쟁점에 대한 자율적, 점진적 논의 경험을 통해 축적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독재에 대항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정치적, 제도적 민주화를 통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유럽식의 전면적 시민합의 모형에 입각한 공공 정책은 관주도의 밀어붙이기 식 공공 정책만큼이나 정책적 실효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게다가 동일한 쟁점, 예를 들어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규제 정책이나 기후변화 대응 규제 정책에 대해서도 유럽과 미국, 일본은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이는 이들 나라가 각기 다른 경제적 합리성 개념을 적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각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의 차이에 대한 고려와 각국의 규제의 역사와 이념적 지향점을 살펴봄으로써만 각국의 정책이 갖는 특징과 근거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버트 사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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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합리성이 갖는 이론적 한계에 대해서는 이미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개념이나, 정확하게 합리적인 계산이 불가능하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기거렌저의 어림규칙(heuristics) 활용과 같은 방법이 활용된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의 행동/행태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비합리적’인 행동 양상이 무작위적이지 않으며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비합리적(predictably irrational)이라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이들 행동이 공공 정책적 상황에서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요인임을 밝혀냈다. 이들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비합리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행동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진 ‘전형성’을 가지며, 그 전형성의 근원을 잘 탐색하다보면 우리 삶의 중요한 특징인 가치, 세계관 등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중요하지 않아 여태까지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잘 다룰 수 없었기에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정당화가능한 공공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고려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포괄적인 의미의 정책 비용과 정책 효과에 포함되는 사회문화적, 인문학적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다양한 합리성 요인을 고려할 것인가?

공공정책의 관점에서 경제적 합리성, 사회문화적 합리성, 인문학적 합리성의 세 층위는 개념적 수준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구별이 가능하다. 경제적 합리성은 경제적 인간(economic man)의 모형틀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여 예측하려는 것이다. 합리적 행위자의 집단으로 사회를 파악하고 사회적‘비용-편익’ 분석을 적용하여 정책적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의 배후에는 경제적 합리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에 비해 사회문화적 합리성이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합리성의 사회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책수행 과정에서 사회적 측면이란 개인이 여러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거나 구조적으로 편입된 사회집단 사이의 이해관계의 조정과 관련된다. 즉, 이해집단(interests group)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대한 고려가 사회적 합리성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합리성의 고려는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의 성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사회집단의 다원성이 약하기에 사회적 합리성에 대한 고려가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고려와 그다지 다른 결과를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문화인류학자 Mary Doug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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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합리성은 사회적 집단의 상호작용을 넘어서 구별될 수 있는 문화공동체에 고유한 전통, 제도, 가치체계에 대한 고려를 의미한다. 각기 다른 사회집단은 동일한 사물이나 금전적 이득에 대해 서로 다른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이는 공공 정책 수행과정에서 상당한 편차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인들은 체리를 먹고 찬물을 마시는 것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미국인들은 이를 매우 상쾌하다고 판단한다고 매리 더글라스는 지적한다. 이처럼 위험이나 오염에 대한 다른 문화적 판단은 관련 정책의 수행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경제적 합리성에 입각하여 추진한 정책이 사회문화적 합리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여 실패한 사례는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우리나라의 시민사회가 성숙하면서 더 이상 국가가 ‘선의’를 갖고 추진한 정책에 대해 전국민의 공감대를 당연시할 수 없게 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과정에서 건설 부지의 지질학적 안정성과 비용 대비 편익의 계산 결과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정책 수행 과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이제는 분명해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의 증거로 (그 결과가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치적 견해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더라도) 간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관련 정책에서 확률로 부여되는 (그래서 ‘비용-편익’ 분석에서는 하나의 추상적 숫자에 불과한) ‘위험(risk)’이 아니라 사람들의 위험인지(risk-perception)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실제로 비행기 사고 확률이 자동차 사고 확률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동차를 비행기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는 분명하게 비합리적인 행동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의 행동을 경제적 합리성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다. 정책적 효율성을 위해 이러한 합리성의 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와 구별되는 인문학적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적 합리성은 그 어원상 우선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문학만이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인간관은 분명 인간의 행동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 인간은 경제적 합리성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비록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하지만) 행동한다. 사회문화적 합리성이 강조하는 사회구조, 제도, 문화적 상징성 등이 차지하는 역할 역시 인간을 보다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문학적 합리성이 경제적 합리성, 사회문화적 합리성과 완전히 분리된 영역에 대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합리성의 특징은 합리성의 다른 두 층위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역시 핵심은 합리성의 철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을 조명한다는 데 있다. 합리성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경제적 합리성이나 사회문화적 합리성이 당연시하는 개념들이나 이론적 특징들이 실은 매우 복잡한 질문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질문들에 어떤 방식으로 대답하는 지에 따라 실제로 앞선 두 합리성에 근거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 점을 설명해보자. 정책 결정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 비용-편익 분석을 수행하여 그 정책을 위해 필요한 비용이 편익을 넘어선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합리성에 입각한 판단은 해당 정책의 타당성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문학적 합리성에 논의를 집중하기 위해 이 정책의 경우 사회문화적 합리성에 대한 추가적 고려가 필요하지 않는 정책 내용을 담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경제적 합리성에 의한 평가가 해당 정책에 대한 최종 평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경제적 합리성의 근거가 되는 비용-편익 분석에서 ‘비용’과 ‘편익’이 인문학적으로 심층적 분석이 필요한 복합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에 따라, 그리고 그 결과를 특정 제도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했을 때를 고려하면, ‘객관적’으로만 보였던 비용-편익 분석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비용 항목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 비용이 평가되는 구체적 맥락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간단하게 말해서 동일한 정책이라도 미국에서 시행될 때의 비용과 한국에서 시행될 때의 비용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경제학적 ‘비용’은 하나의 숫자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제도적, 사회구조적, 문화적 요인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비용에 포함되는 다양한 항목들이 대부분 사회적, 제도적으로 규정되는 것들이다. 세금이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항목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만약 어떤 사회에서 공공 요금이 특정 정책에 의해 생산 원가 이하로 묶여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추진되는 경제 정책은 상대적으로 낮은 단가의 공공요금으로 인한 비용 감소 효과를 본질적으로 포함하고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그 상황에 주목하여 따로 분석되지 않으면 비용-편익 분석 과정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특정 정책 관련 규제가 많은 상황이라면 정책 수행 비용은 늘어날 것이다. 거꾸로 해당 정책에 유리한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미리 조성된 경우라면 비용은 낮아질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비용-편익을 계산할 때 오염배출권 시장이 어떤 구조적 특징을 갖고 어떤 범위에서 작동하는지에 따라 비용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오염배출권이 어느 정도 규모에서 어떤 나라들 사이에 거래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국제 규정이 조금만 바뀌어도 ‘비용’값이 엄청나게 바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경제적 합리성에서 간단하게 취급되는 ‘비용’은 수많은 인간적, 사회문화적 측면을 가진 심층적 개념인 것이다.

이런 점을 인문학적 분석을 통해 깨닫게 되면 해당 정책의 합리성은 계산을 통해 얻어지거나 관련 이해집단을 고려해서 수정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관련 사회제도나 사람들의 인식, 특히 삶에 대한 인식이나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아예 새롭게 정의될 수 있는 복합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즉, 합리성은 정답과 오답이 있거나 교섭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가치적재적(value-laden) 분석을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다듬어갈 수 있는 개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이 경제적 합리성과 사회문화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합리성의 기여가 될 수 있다. 즉, 두 합리성 개념이 당연시하거나 단순하게 규정하는 합리성의 고려에 등장하는 여러 개념들에 대한 메타적 고찰을 수행함으로써 정책에 대한 합리성 평가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문학적 합리성에 대한 고려는 경제적 논의의 틀에서는 너무나 ‘자명해’ 보이는 여러 사안들과 관련된 합리성 판단이 실은 매우 ‘논쟁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문학적 합리성에 대한 고려는 이런 물음을 탐색함으로써 보다 통합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정책입안과 평가 과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과학기술 정책을 포함한 중요한 공공 정책의 기획, 수행, 평가 과정에서 이 글에서 제시한 다양한 수준의 합리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우리는 공공정책의 책무성을 높이고 국민복지를 보다 바람직한 방식으로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국가 수준의 과학기술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한 후 이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개입하는 여러 수준의 합리성 고려에 대한 필자의 기존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작성되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아래의 <더 읽어볼 거리>를 참조하기 바란다.-

더 읽어볼 거리

● <원자력 트릴레마>, 김명자, 최경희 지음, 까지글방.

● <최악의 시나리오>,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홍장호 옮김, 에코리브르.

● <과학, 기술, 민주주의>, 대니얼 리 클라인맨 지음, 김명진, 김병윤, 오윤정 옮김, 갈무리.

●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홍성욱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이상욱 외 지음, 동아시아.

● <정책 결정 및 수행 과정에서 합리성의 세 층위적 고려 방안>, 이상욱, 미야가와 타쿠야 지음, 인문정책연구총서 2012-12,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출처 : 한양대학교 이상욱 교수

[이미지 출처]

1. http://www.gninform.or.kr/weel_system/weel_bbs/board.php?bo_table=home_bbs5&wr_id=98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47&aid=0000101293

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3&contents_id=5775

4.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89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