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통섭을 위한 새로운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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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문의 통섭(다학제간 통합)은 왜 필요한가?

 

두 가지 정도 이유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다 어떻게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유형은 한 전공 분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당면한 문제들을 위해서 융합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전기 자동차에 필요한 배터리를 만드는 데는 화학, 물리, 전기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필요하고, 이렇게 다양한 전공을 한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전기 자동차를 만든다고 하면, 이렇게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에,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 그리고 인문사회학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도 필요합니다.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전기 자동차를 구매해서 사용할 사람들이 전기 자동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에 전기 자동차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호감을 가지고 있는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합니다. 엔지니어들은 기술을 발전시키면 사람들이 당연히 그것을 쓴다고 생각을 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최근 손목에 차는 삼성의 갤럭시 기어가 출시되었는데,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계속 실패하는 기술 중에는 화상전화도 있습니다. 이런 기술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지만, 또 보여주기 싫은 것들도 있습니다. 일반 전화는 이를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서 사용해서 굉장히 대중적인 기술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고, 화상전화는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이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보여주기 싫은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 외에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안해 주기 위해서 기술과 인문사회의 융합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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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이보다 조금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는 문제, 즉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고, 우리가 또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여러 정책적인 노력이나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융합이 필요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밀접하게 고려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기술적인 발전이나 경제적인 풍요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의 공유된 느낌입니다. 첫 번째 요소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고, 두 번째는 우리 사회가 살만한 사회구나, 내가 여기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 기를만한 사회구나, 심지어는 내가 이 사회를 위해서 희생을 좀 해도 내 인생이 아깝지가 않은 그런 사회구나 하는 느낌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것들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기준들이 기술·경제의 발전과 상호작용 하면서 조금씩 바뀌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술과 경제의 발전, 풍요, 성장, 돈 이런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더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있고,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계속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만 가지고는 결코 행복하다든지 이 사회가 살만하다든지 하는 것들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인문과 기술 사이의 밀접한 대화와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가 나아가는 큰 길을 제시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Q. 기술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기술과 인문의 융합은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해서, 다양한 차원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인문은 잘 섞이지가 않습니다. 이 둘의 만남에 대해서 논의하는 경우도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을 위한 인문의 도움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술과 인문의 상호작용을 충분히 논의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인문에 도움을 주는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인문에 기술이 도움을 주는 양상을, 그리고 세 번째로 기술과 인문이 서로가 서로를 도움을 줌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학제간 분야를 형성하는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제가 전공한 분야에서 생각해보면 기술과 인문이 접할 수 있는 한가지의 큰 유형이 기술과 역사의 접합, 그리고 기술과 철학의 접합인 것 같습니다.

사실 흥미로운 현상 중 한 가지는 기술이 이렇게 중요하고 기술이 차지하는 부분이 넓은데 반해 기술에 대한 철학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술에 대한 철학은 빈약합니다. 철학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람에 대한 일입니다. 혹은 자연에 대한 철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해 기술에 대한 철학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가 기술 자체가 흥미가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엔지니어들에게는 흥미로운 대상일지 몰라도, 인문학자나 사회학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재미없는 대상이고, 너무 빤한 대상입니다. 인간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기술을 만들었고, 기술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계가 시계를 만드는 장인이나 시계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할 수 있지만, 시계가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전혀 중요한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들어가 있고, 그 목적을 단순하게 수행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인문학자가 심각하게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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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엔지니어들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게 되는데, 그렇게 만든 기술이 인간관계를 많이 바꾸게 됩니다. 시계가 보급이 되면서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서 일하고, 해가 지면 잠드는, 즉 하루 노동시간이 계절마다 달랐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리듬입니다. 그런데 시계가 생기면서 그것을 무시하게 됩니다.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까지 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돈이라는 관념 역시 시계가 생기면서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시간에 따라서 임금을 지불하고, 시간을 사고팔고, 시간을 컨트롤하는 자가 사회에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시계라는 것이 그냥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돌아가는, 엔지니어들만 관심을 갖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 같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얘기거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문·사회학자들이 우리에게 기술적인 대상들이 얼마나 유용한지, 이것들이 인간 사이의 관계들, 권력 구조들, 사회관계들, 심지어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바꾸고, 또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기술에 대해서 더 많은 분석과 연구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자와의 협력 및 통합이 가능해집니다.

지금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가지는 관심이 너무 피상적입니다. 또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연구 대상을 넘어선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전문적인 관심을 가지기 어렵고, 많은 경우에 그저 자신의 전공에서 멈추어버립니다. 기술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인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이 기술에 줄 수 있는 도움 중 하나가 될 수 있고, 이는 더 다양한 차원의 교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Q. 융합과 관련하여 현재 교육환경의 문제점은?

 

융합을 위한 교육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며, 이전보다 여러 가지 점에서 나아졌다는 사실은 고무적입니다. 그렇지만 융합을 위한 교육이 약간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교육자의 태도가 중요한데요, 특히 교육자는 선생님이 무심코 던진 말을 학생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둔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어떠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문·사회학은 간단한 교양으로 배우는 것뿐이지 그 이상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기술만 잘 하면 된다’라는 말을 별 생각 없이 던지는데, 이런 말이 학생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과과정의 문제보다는 교육자의 이런 표현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기술을 전공 하는 엔지니어들은 대학에서 공대 학생들에게 인문·사회 부문을 많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불만이란 이렇습니다. 현재 엔지니어링이 3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많이 발전을 했는데, 지금의 엔지니어들은 지난 30년 동안에 발전한 내용만이 아니라 30년 이전의 내용도 어느 정도는 다 배워야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대학에서 배워야 할 내용이 이전에 비해 훨씬 늘어난 것입니다. 엔지니어링 자체만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거기에 인문·사회와 같은 교양이 계속 추가되니까 불만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부전공, 복수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하나의 전공도 충분히 익히기 힘들다고 봅니다. 엔지니어는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가 맡은 분야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것을 다 배우다보면 자기가 정말 알아야 할 내용도 잘 모르고 졸업한다는 식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아직도 공대나 기술계 전반에 널리 퍼져 사실이 융합교육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커리큘럼이 잘 안 되어있다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융합 교육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교수가 하는 이런 말을 한두 번 들으면, 학생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다음부터는 똑같이 하려고 합니다. 이런 다음부터는 학생들에게 인문·사회 교양은 학교에서 하라고 해서 억지로 하는, 필요 없는 수업이 되는 겁니다.

사실 엔지니어들이 하는 그런 얘기들은 교수를 롤모델(role-model)로 하는 얘기입니다. 공대 교수가 되려면 자기 분야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좋은 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받으면서 논문을 많이 쓰면 됩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전공만 공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 왜 학생들에게 쓸 데 없이 다른 과목을 가르치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공대를 나와서 공대 교수가 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요? 아마 1-2% 정도 될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회사에 취직을 한다든지, 전공과 관련 없는 다른 일을 한다든지, 공무원이 된다든지, 사업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지, 전부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1-2%를 위한 방식으로 나머지 98-99%를 가르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에 있는 사람들에게 엔지니어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물어보면, 전공 지식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입니다. 가장 부족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합니다. 협동능력, 리더십,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등도 부족하다고 지적 받는 부분입니다. 전문지식은 어차피 계속 변하고 바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지식을 배우고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계속 노력해서 공부하는 태도를 배운 뒤에 스스로 노력을 해서 새로운 지식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사람이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분들은 젊었을 때 일찍 개발을 해두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개발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성격, 즉 퍼스낼리티(personality)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엔지니어들이 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도,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다른 전공자들에게 높은 지위를 빼앗길 수도 있고, 그 사람들보다 뒤쳐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생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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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의 교육은 공대 교수가 될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학적인 전문 지식과 함께 인문·사회과학적인 통찰력을 갖추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인문사회 과목을 교양의 느낌으로 교육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사 개론, 정치학 개론 등 이런 수업을 엔지니어들에게 주입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깊게 들어가는 수업을 해야 합니다. 엔지니어들한테 철학 개론을 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철학에 대해서 조금씩 맛보는 것은 관심이 생겼을 때 교양서적을 읽으면 됩니다. 오히려 철학과에서 할 것만 같은 수업들, 예를 들면 칸트 철학이라든지, 영국 경험론이라든지, 20세기 실존철학에 대한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철학과에서 개설되는 이런 수업을 수강해야만 다른 학생들과 섞일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공대에서 이루어지는 교양 과목들을 보면, 약간의 교양 과목들도 전부 다 공대 안에서 자체적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다른 학생들이랑 섞이면서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Q. 융합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가 먼저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대학이 가진 한계 중 하나입니다. 교수는 좁은 커리어 패스를 가졌던 사람으로, 세상과의 접점도 많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보통 교수들이 교수가 되기 위해서 공부한 과정에서는 자신의 지도교수와의 1:1 관계가 가장 중요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수가 되고, 자신의 좁은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을 가르칩니다.

이러한 관점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합니다. 교수가 학부 학생을 가르치는 목적은 자신과 비슷한 교수를 길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될 학생들을 위해 대학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학생들이 너무 과다한 전공교육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들에게 보다 다양한 경험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들을 하다보면 많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융합과 관련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가 돈이 없거나, 정책이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교육자의 태도, 대학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필요합니다. 교수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 교수처럼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될 것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연구가 필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사회 조직 내에서 더욱더 일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스킬(skill)에 대해 교육자는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들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융합을 위한 조건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출처 :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교수  홍성욱

 

[이미지출처]

1. http://www.steamedu.com/2006-2010_Short_WHAT_IS_STEAM.pdf

2. http://en.wikipedia.org/wiki/Philosophy_of_happiness

3. http://en.wikipedia.org/wiki/File:Immanuel_Kant_3.jpg